
-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는 것과 없애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사기만 하면 되팔 수 있습니다.
- 없애면 주식 수가 줄어 남은 주주의 몫이 커집니다. 이 효과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 2026년 3월부터 회사는 사들인 자기 주식을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없애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태오입니다. 주식을 한 종목이라도 갖고 계신 분이라면 올해 자사주 소각이라는 말을 여러 번 보셨을 겁니다. 회사가 시장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그것을 없애는 일을 가리킵니다. 없앤다는데 왜 주주에게 좋은 소식으로 읽히는지, 그리고 사는 것과 없애는 것이 왜 서로 다른 일인지를 오늘 차근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회사도 자기 회사 주식을 삽니다
회사는 시장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들여 회사가 들고 있는 주식을 자기주식이라고 하고, 줄여서 자사주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조금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들고 있으면 그 주식으로 주주총회에서 표를 던질 수 있을까요. 던질 수 없습니다. 상법은 회사가 가진 자기주식에 의결권이 없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배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가 자기 자신에게 배당을 줄 이유가 없으니 실질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자사주는 장부에는 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주식입니다. 표도 없고 배당도 없습니다.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이는 순간 시장에 돌아다니는 주식이 그만큼 줄어들고, 그래서 매입 단계만으로도 주가에 힘이 실립니다. 올해 코스피가 급락한 날마다 아래를 받쳐 준 돈의 정체가 이것이었습니다. 자세한 흐름은 코스피 장중 급락을 되돌린 자사주 매입 이야기에 적어 두었습니다.
사는 것과 없애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많은 분이 자사주 매입과 자사주 소각을 같은 말로 쓰시는데, 둘은 단계가 다르고 무게도 다릅니다.
매입은 회사가 주식을 사서 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들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내놓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각은 그 들고 있던 주식을 없애는 절차입니다. 없어진 주식은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 자사주 매입 | 자사주 소각 | |
|---|---|---|
| 회사가 하는 일 | 시장에서 사서 보유 | 보유한 주식을 없앰 |
| 발행주식 수 | 그대로 | 줄어듦 |
| 되돌릴 수 있나 | 다시 팔 수 있음 | 되살릴 수 없음 |
| 주주가 얻는 것 | 당분간의 수급 | 영구적인 지분 확대 |
시장이 매입 발표보다 소각 발표에 더 세게 반응하는 이유가 이 표의 셋째 줄에 있습니다. 회사가 사기만 한 주식은 언제든 다시 시장에 나와 주식 수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소각은 그 문을 닫아 버립니다.
주식 수가 줄면 내 몫은 얼마나 커집니까
회사가 1년에 번 돈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을 주당순이익이라고 합니다.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EPS라고도 씁니다. 주식 한 주가 이익을 얼마나 대표하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분모가 줄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가 버는 돈이 그대로여도 한 주가 대표하는 이익은 커집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의 회사입니다.
| 항목 | 소각 전 | 소각 후 |
|---|---|---|
| 발행주식 수 | 100만 주 | 90만 주 |
| 연간 순이익 | 100억 원 | 100억 원 |
| 주당순이익 | 10,000원 | 11,111원 |
회사는 한 푼도 더 벌지 않았는데 주주가 들고 있는 한 주의 값어치는 11.1% 늘었습니다. 지분율도 같이 올라갑니다. 1만 주를 갖고 계셨다면 지분이 1.00%에서 1.11%가 됩니다. 주식을 한 주도 더 사지 않고 회사에 대한 몫이 커진 셈입니다.
실제 규모를 보시면 감이 잡히실 겁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8월 40조 원어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없애기로 했습니다. 발행주식의 3.3%에 해당합니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입니다. 그 결정의 안쪽은 SK하이닉스 40조 소각을 뜯어본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왜 소각까지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까
사기만 하고 들고 있으면 안 되느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그렇게 해 온 회사가 많았고, 그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앞에서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그 자사주를 바깥의 누군가에게 팔면 어떻게 될까요. 팔린 순간 그 주식은 평범한 주식이 되어 의결권이 되살아납니다. 회사와 사이가 좋은 곳에 팔면 경영진 편에 서는 표가 갑자기 생겨나는 셈입니다.
시장에서는 이 현상을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주가를 받치겠다는 명분으로 주주 모두의 돈을 써서 산 주식이, 정작 경영권이 흔들릴 때는 특정 편의 표로 바뀌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소각은 이 가능성을 아예 없앱니다. 없어진 주식은 누구에게도 팔 수 없습니다.
2026년부터 소각이 의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법이 바뀌었습니다. 자기주식 소각을 의무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2026년 2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3월 6일 공포되어 그날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핵심은 기한입니다. 회사는 자기주식을 취득한 날로부터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소각해야 합니다.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들고 있던 자사주에는 준비할 시간을 더 주어, 시행일로부터 1년 6개월 안에 처분하거나 소각하도록 했습니다.
빠져나갈 길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임직원 보상이나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처럼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사유가 있고 그 사유를 정관에 적어 둔 경우에는 계속 보유할 수 있습니다. 정관은 회사의 기본 규칙을 적어 둔 문서이고, 고치려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합니다. 예외로 가려면 주주 앞에서 한 번은 설명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법 조문과 절차를 더 보기
주식을 없애는 일은 원래 자본금을 줄이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다만 상법 제343조 제1항 단서는 회사가 가진 자기주식이라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각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습니다. 이때 소각할 수 있는 자기주식은 배당가능이익으로 사들인 것에 한합니다. 배당가능이익은 회사가 주주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몫으로 법이 계산해 둔 금액을 말합니다. 자기주식에 의결권이 없다는 근거는 상법 제369조 제2항입니다.
배당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회사가 번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크게 둘입니다. 배당으로 현금을 나눠 주거나, 자사주를 사서 없애거나.
| 현금배당 | 자사주 소각 | |
|---|---|---|
| 주주가 받는 것 | 현금 | 늘어난 지분과 주당 이익 |
| 세금 | 받는 시점에 원천징수 | 뗄 것이 없음 |
| 주식 수 | 그대로 | 줄어듦 |
| 언제 현금이 되나 | 지급일에 바로 | 주식을 팔 때 |
세금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배당금은 손에 쥐는 순간 세금을 떼고 들어옵니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 원 이하라면 지방세를 포함해 15.4%를 떼는 것이 기본입니다. 반면 소각은 주주에게 현금이 오가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서 뗄 세금이 없습니다. 값어치는 주가에 얹혀 있다가 주식을 팔 때 실현됩니다.
다만 어느 쪽이 늘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배당은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현금이 들어오고, 소각은 주가가 받쳐 주어야 값어치가 손에 잡힙니다. 배당을 생활비로 쓰시는 분과 오래 들고 갈 분의 셈이 서로 다릅니다. 올해 삼성전자가 대규모 주주환원을 발표하고도 주가가 급락한 날의 사정이 바로 이 갈림에 있었습니다. 배당이 아니라 소각을 기다린 시장에서 그날을 다뤘습니다.
헷갈리기 쉬운 세 가지
첫째, 소각과 감자는 다릅니다. 감자는 자본금을 줄이는 일이고, 대개 쌓인 손실을 털어 내려고 합니다. 주주에게는 대체로 나쁜 소식입니다. 반면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번 돈으로 주식을 사서 없애는 일이라 방향이 반대입니다. 둘 다 주식 수가 줄기 때문에 같아 보이지만, 돈이 나가는 쪽인지 손실을 메우는 쪽인지가 갈립니다.
둘째, 소각한다고 자본금이 줄지는 않습니다. 배당가능이익으로 산 자사주를 없애는 경우 발행주식 수는 줄어도 장부의 자본금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액면가에 주식 수를 곱한 값과 자본금이 서로 맞지 않게 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상입니다.
셋째, 소각 발표가 곧 주가 상승은 아닙니다. 소각은 주식 수를 줄일 뿐 회사가 버는 힘을 키우지는 않습니다. 실적이 꺾이고 있다면 줄어든 주식 수가 그 하락을 막아 주지 못합니다. 소각은 나눌 조각을 줄이는 일이지 빵을 키우는 일이 아닙니다.
공시에서 무엇을 보면 됩니까
앞으로 자사주 관련 공시를 만나시면 네 가지만 확인하셔도 대부분 읽힙니다.
- 매입인가 소각인가사겠다는 것과 없애겠다는 것은 다른 약속입니다
- 발행주식의 몇 퍼센트인가금액보다 비율이 내 몫의 변화를 말해 줍니다
- 언제까지 하는가기간이 길수록 효과는 나뉘어 들어옵니다
- 예외 사유를 정관에 두었는가계속 보유하겠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특히 첫 줄이 그렇습니다. 회사가 취득만 결의하고 소각을 함께 말하지 않았다면, 그 주식은 아직 돌아올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올해 법이 바뀌면서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짧아졌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수치와 제도 내용 출처: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3차 상법 개정 경과와 요건은 법무부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관련 개정 상법 길라잡이」(2026년 3월 11일) 및 김·장 법률사무소 해설(2026년 3월). 상법 제343조·제369조 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 SK하이닉스 소각 규모는 2026년 8월 19일 이사회 결의 공시 및 한국경제·뉴스핌 보도. 배당소득 원천징수 세율은 2026년 9월 기준 현행 세법.
본 글은 개인적인 분석일 뿐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